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콜럼바인 사건 타임지.jpg|width=100%]]}}} || || [[타임(주간지)|타임지]]에 실린 콜럼바인 사건: '옆집에 사는 괴물들 -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범인들의 사진을 둘러싼 작은 흑백 사진 13장은 이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내 총격과 [[폭탄 테러]] 미수 사건. 12학년(대한민국 기준 고3) 학생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밥 딜런]]에서 따온 이름이다. 부모의 방침으로, 그의 친형 이름도 [[조지 고든 바이런]]에서 따온 바이런이라고 한다.]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 총 13명을 살해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살해되었고 범인들은 이후 [[자살]]했다. 부상자 21명이 발생하였고 경찰과 총격도 오갔으며 또 다른 3명은 학교를 탈출하려다 부상을 입었다. 1999년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교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이 범죄는 여러 [[카피캣]]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콜럼바인'은 집단 총격의 대명사가 되었다. 총격 외에도 사제폭탄 몇 개가 있었다. 그 중 2개는 교내식당에 배치되었는데 폭발하지는 못했지만 식당 내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범인들은 주차장에 있던 본인들의 차에도 설치했지만 폭발하지 못했고 학교와 떨어진 다른 곳에는 폭탄 2개를 시선 끌기용으로 설치했는데 그 중 하나만 부분적으로 폭발했다. 이 범행의 동기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리스와 클레볼드는 무려 약 1년에 걸쳐 대학살을 계획했고 미국 역사상 가장 사망자를 많이 내기를 바랐다. 미국 언론 USA Today는 콜럼바인 사건을 "웅장하게 계획되었고, 끔찍하게도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총기난사뿐만이 아닌 폭탄 테러였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경찰은 학교 진입이 늦었고 총격 중 개입하지 않아 거세게 비난받았다. 이 사건으로 총기난사 상황에서 활용되는 즉각적인 행동 신속배치 전술이 미국에 도입되었으며 콜럼바인은 무관용 원칙을 바탕으로 학교 안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총기 및 총기 규제법, 고등학생 집단, 하위문화권, [[왕따]], 그리고 또한 10대 청소년들의 약물 [[항우울제]] 사용, [[인터넷]], [[비디오 게임]]과 영화에서 폭력성을 두고 논쟁과 도덕적 공황이 촉발되었다. 사건 이후 희생자인 레이첼 스콧의 차와 존 톨민의 트럭을 포함한 많은 즉석 기념물들이 만들어졌다. 클레멘트 공원에 있는 언덕 위에 희생자들과 범인들을 위한 십자가 15개도 세워졌다. 단, 해리스와 클레볼드의 십자가들은 나중에 논란을 일으키면서 없어졌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임을 감안하더라도 총기를 이용한 무차별 대량살인 사건을 일으켰으니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범죄자)|조승희]]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이후 조승희를 위한 묘도 세워졌지만 나중에 없어졌다.] 영구적인 기념비는 1999년 6월에 계획되었다. 설계에는 3년 반이 걸렸고 희생자 가족, 생존자, 고등학교 학생과 교직원, 지역사회의 의견을 포함했다. [[2006년]] 6월에 기념관 기공식이 진행되었으며 콜럼바인 기념관은 [[2007년]] [[9월 21일]] 대중에게 개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